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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과 위만왕조

위만조선과 위만왕조

위만조선은 고조선 말기에 한반도를 지배한 왕조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로 기록됩니다.

위만왕조의 시작

사기에 의하면 위만은 고조선의 후기에 중국 연나라에서 도망친 장수였으며 1000여명의 동족으로 모아서 상하장이라는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이 후 위만은 요통의 태수 직위로 변방 방어의 임무를 맡다가 연나라와 제나라의 유민들을 모아서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검성을 도읍으로 하는 위만조선을 세웁니다.

당시 위만조선은 주변의 옥저와 진번국, 임둔국을 복속시켜서 영토를 확장했으며 위만은 한나라어와 고조선 언어 둘다 능통했다고 합니다.

중국과의 관계

한나라 전기

위만왕조가 설립될 무렵 중국은 한나라 1년(기원전 194년 전)이었습니다.

위만조선은 중국 한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전기 한나라를 외신으로써 조공을 주기도 하며, 대가로 주변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우위권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선진 문물을 교류하는 등 활발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분쟁

3대 왕인 우거왕 시대에 반한 노선을 추구하였고 이에 마찰과 전쟁으로 이어져씁니다.

당시 우거왕이 살해되면서 위만조선은 멸망하게 됩니다.

 

철기시대의 시작

위만조선을  철기시대로 볼 것인지에 고나해서는 현재에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철기 문화란 철기를 장검, 투겁창, 괭이와 같이 두들겨 만드는 시기를 말하는데, 위만조선의 유적에서는 아직까지 철기 사용을 했었던 유적들이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의 후예인가? 연나라의 후예인가?

위만이 고조선 사람이었는지, 연나라 사람이었는지에 관해선 아직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고조선을 점령한 뒤에도 칭호를 그대로 조선으로 사용했으며 법과 문화 역시도 유지한 것을 보면 그가 조선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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