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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의 대마도정벌

이종무의 대마도정벌

대마도 정벌의 배경

태종 시절부터 왜구의 침략과 약탈이 이어져 오던 중 세종 1년에 대마도에서 심한 흉년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은 식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왜구 해적들은 대마도를 본거지로 삼고 명나라 요동까지도 해적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세종1년 5월 5일에 왜선 39척이 명나라에 가던 도중 비인현 도두음곶에 침입, 약탈을 감행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명나라에서는 이에 격분해 일본 정벌을 계획하게 됩니다.

 

조선의 대응

세종 1년 대마도의 해적 활동을 알게 되자, 태종과 함께 대마도에 군사 행동을 계획합니다.

이 후 6월 19일 정벌대가 거제도 남쪽 주원방포를 출발, 대마도로 향했고 이때 동원된 병선은 227척, 병력은 17,285명이었습니다,

이튿날인 20일 선발대가 대마도를 공격하여 적선 130여 척을 나포하는 등 대승을 거두고 정박했다.

그러나 얼마 후 좌군이 매복군에게 공격당해서 조선군 100명이 전사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대신 이종무는 장기전으로 돌입하기 위한 태세를 갖춥니다.

당시 대마도의 실권자였던 도도웅와는 이종무에게 와서 철수를 간청하게 되었고 이에 이종무는 거제도로 철수하게 됩니다.

 

조선 중기의 명장 이종무

이종무는 1360년에 태어난 중요한 군사 및 정치 인물로, 그의 아버지는 공민왕 시절의 유명한 관리, 이성계의 친한 동료인 이을진이었습니다.

그는 1381년 강원도에서 왜구 침입을 성공적으로 격파, 이로써 정용호군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1397년에 옹진에서의 왜구 침입 시 끝까지 저항, 첨절제사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1400년, 왕자의 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방간의 세력을 제거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통원군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1419년에는 대마도 정벌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대마도 정벌 후의 변화

이 원정 후 대마도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세종은 대마도와의 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로써 대마도는 100년간 조선을 침략하지 않게 되며, 조선은 상대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6진 개척

대마도 정벌과 더불어 세종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군사 행동은 6진 개척이었습니다.

이는 세종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이루어진 군사 행동으로, 조선의 영토 확장과 국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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